서평) 슬럼, 지구를 뒤덮다
부부가 함께쓰는 리뷰/아내의 도서리뷰

서평) 슬럼, 지구를 뒤덮다


도시에 관한 대책없는 낙관론에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가?

제 3세계의 도시들에 눈을 돌려보자.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반부 지역의 도시들.

아프리카의 경우 경제가 매년 2~5%씩 후퇴하고 있음에도 도시의 인구는 매년 4~8%씩 증가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인구는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슬럼이 많은 제3세계 도시에서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 도시는 (경제규모가 아닌) 사람의 수로 보자면 그 어느지역보다 중요한 지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지역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적다. 내 전공인 Urban economics을 공부하는 학자들 중에서 이들 도시지역을 관통하는 일반론을 만드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개발 경제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간헐적으로 다루는데 전체 경제학자 중에서 비중은 매우 적다)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고 그래서인지 솔직히 이 책의 어떤 내용들은 구역질이 나고 모른척하며 덮어버리고 싶기까지 했다. 슬럼에 살고 있는 인구의 숫자에 비해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의 면적이 얼마나 보잘 것없는 수준인지 안다면, 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한다. 이들 슬럼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시를 밀어내면 더 취약한 지역으로 슬럼이 밀려날 뿐이다. 산사태나 지진같은 자연재난으로 이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안타깝게도 취약한 지역으로 밀려날 수록 이러한 일이 발생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슬럼은 도심과 변두리에 존재하는데 공식슬럼과 비공식 슬럼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빠르게 증가하는 슬럼 인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농촌을 급격하게 쇠퇴하게 만들었고 (농작물은 수입하면 훨씬 싸니까!)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도시 지역에 모든 인구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게 한다. 도시와 단절되는 순간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들에게 다른 어떤 선택이 있을 수 있었을까? 세계화에 월드뱅크와 IMF가 상당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슬럼이 매우 커진데는 세계화만 기여한 것이 아니다. 기관시설이 갖춰지기도 전에 서둘러서 수도를 비롯한 관개시설을 민영화 하면서 가격은 비싸지만 매우 소수만 공급받을 수 있는 독점체제가 완성되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생존을 위협당하는 것은 상당부분 도시의 급수를 담당해야 할 공공이 전혀 그 역할을 못하는데 있다. 게다가 정부는 부패 등을 효과적으로 막을만큼 강력한 힘을 갖추지도 못했다. 슬럼지역은 결과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물에 미국을 비롯한 잘사는 도시들의 주민들보다 4배이상 비싼 돈을 내면서도 그 물이 안전할지 전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삶에 필요한만큼 충분히 공급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국가는 이들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놓기 보다는 감추는데 급급한 편이다. 중국의 빈민 통계는 검증된(?) 신뢰받지 못하는 통계이고 서울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전세계에 빈민지역을 숨기기 위해 무자비하게 철거를 감행했다. 슬럼가에 살던 사람들을 모두 외곽지역으로 옮겨놓고 그들에게 어떤 인프라나 직장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공공기관들이 사람보다 중점을 두는게 무엇인가라는 점은 생각해볼만한 대목이다.

슬럼 지역의 사람들은 비공식 경제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여기서의 비공식 경제는 그리 미래가 밝은 경제가 아니다. 생존형 노동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나마도 너무 많은 unskilled people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그 서비스의 가격은 매우 하찮은 수준이다. 이러한 도시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다. 양극화에 지친 도시민들의 폭동을 막을 수 없다면, (즉 그들의 삶을 더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는 상태에서 이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면) 도시는 결국 쇠퇴하게 될 것이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
국내도서
저자 :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 / 김정아역
출판 : 돌베개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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