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도시의 승리 - 에드워드 글레이저 (Gleaser Edward)
부부가 함께쓰는 리뷰/아내의 도서리뷰

[서평] 도시의 승리 - 에드워드 글레이저



서평을 시작하기에 앞서... 
여느때와 달리 도서 리뷰가 아니라 서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도시의 승리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는 훗날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다. 단순히 내용을 요약하고 소개하는 (혹은 그저 책을 읽고 느낀점만 정리하는) 책 리뷰와 달리 서평을 쓴다는 것은 도시의 승리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이 굉장히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에드워드 글레이저만큼은 아니지만 도시에 관심이 많고 게다가 경제학자라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전공도서가 아닌 교양서적을 한챕터 한챕터 조근조근 씹어가며 읽었다. 참고한 논문 및 서적만도 이~삼백여편에 이르는 이 책은 참으로 전문적인 분야를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도시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그런고로 꼭 경제학자나 도시 및 지리학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너무나 잘쓰여진)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의 논지에 모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님을 우선 밝혀둔다.

다양한 각도에서 도시를 다루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는 바로 도시는 사람에게 이롭고 사람들은 도시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도시의 승리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는 도시가 사람이 있는 한 늘 승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화사회는 도시의 집적을 완화시켜줄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은 뉴욕, 실리콘 벨리, 뭄바이 등 다양한 도시에서 더욱 집적하고 있다. 물론 제조업 도시의 몰락은 도시가 늘 영원히 성공하는 것은 아님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지만, 그러한 도시들 역시 휴스턴을 비롯한 신흥 도시에 의해 대체될 뿐, 인류에서 도시가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도시는 어떤식으로든 인류와 함께한다. 

도시가 어떻게 생존하는지 (아니 승리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힘이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원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것은 저자가 시카고에서 배운 것으로 왜 어떤 도시는 쇠퇴하고 어떤 도시는 살아남는지, 어떻게 도시가 부활하는지 가장 중요한 원리를 이해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도시를 형성하게 되면 그 도시는 세계화를 비롯한 각종 변화에 더욱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고 이것은 도시가 승리하는 공식처럼 여겨진다. 디트로이트를 비롯한 많은 제조업 도시들은 하나의 사업이 지배하고 공장이라는 프레임을 도입함으로서 높은 교육 수준을 필요로 하지않았기에 역설적으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도시의 몰락을 가져왔다. 보스턴이나 뉴욕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은 도시가 우위를 잃어가는 산업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시대가 도시에 요구하는 산업들로 유연하게 탈바꿈하였다. 

때때로 도시가 부정적이라는 오해는 마치 가난, 환경문제 등에서도 도시를 주범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한다.

도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많은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부자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모으며 이는 종종 비도심지역보다 높은 빈부격차를 유발한다. 많은 이들은 도시의 빈민들을 도시의 부자 혹은 시골의 평민과 비교하는 오류를 저지르는데, 사실 도시의 빈민들은 시골의 빈민들과 비교되어야 마땅하며 그러한 측면에서 도시는 가난을 조장하기 보단 오히려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게다가 도시는 인프라가 부족한 시골지역에 비해 거주하는 것 만으로도 훌륭한 교통 및 공공시설이라는 이점을 제공한다. "가장 끔찍한 도시의 빈곤과 비교해 보더라도 시골 지역의 상황이 일반적으로 더 나쁘다." -p.144  정치인들은 때때로 도시의 빈민들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는 바람에 시골의 빈민들에게 관심을 덜주곤 하는데, 이러한 행동들은 더더욱 빈민들을 도시로 끌어모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게다가 믿기지 않겠지만 도시는 친환경적이다. 일찍이 제인제이콥스와 데이비드 오언이 주장했던 것 처럼 도시의 고층건물에 사람들이 함께 모여살면 우리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탄소의 배출양을 줄일 수 있다. 자동차 대신 도보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고 공동으로 공유하는 공간이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모든 공간을 사유화 해야하는 시골보다 적은 에너지로 주택에 거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도시인들은 시골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에너지를 덜 사용하기 때문에 지구 전체를 푸르게 한다. 좋은 기후를 가진 지역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고자 도시의 성장을 막고 개발을 반대한다면 그저 에너지를더 많이 소비해야만 하는 지역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탄소를 더욱 많이 배출하여 처음 의도한 친환경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나 도시가 긍정적이고 건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은 초창기 미국 및 유럽도시들이 그러했듯이 범죄와 질병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깨끗한 식수 공급, 치안, 보건 등의 공공 서비스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할 경우, 밀집된 공간 및 사람들은 감염성 질병의 온상이 되며 이는 도시에 사는 것을 매우 위험천만한 일로 만든다. 여기에 부패한 정권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대게 이런 문제는 지역민들의 교육수준 향상, 상수도 설치, 쓰레기 관리, 그리고 범죄율을 낮춘다고 알려진 여러가지 조치들 (형량의 증대, 경찰 병력의 증가 등) 을 적극적으로 병행함으로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이러한 문제가 잘 해결된 도시가 매우 매력적인 장소라는 것은 대게 동의할 것이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상당한 고정비용을 요구하는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의 다양한 볼거리들을 제공할 수 있으며 맛있는 음식을 손쉽게 먹을 수 있고,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기회 등을 제공한다. 미혼 청년들에게는 다른 미혼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기도 하며 쇼핑을 비롯한 다양한 amenity를 제공한다. 게다가 일자리가 많기 때문에 혹여 실업상태에 놓이더라도 다른 고용주를 만날 확률이 높고 또한 여러가지 산업이 집적되어있어 거기서 파생되는 이점들도 누릴 수 있다. 높은 생활비와 임금은 물론 덤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도시에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장벽은 바로 높은 주거비이다. 프랑스 파리와 같이 훌륭한 도시는 부자만이 가까이에 살면서 인프라의 혜택을 누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벽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주택공급을 제한하는 여러가지 정책들이 장벽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토지용도지정(zoning)부터 건물 고도제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 내의 주택공급량은 수요에비해 턱없이 부족하게 되는데, 고등학교 수준의 경제학만 공부했더라도 초과수요 상태에서는 균형보다 높은 가격에서 주택가격이 형성됨을 알 수 있다. 환경보호를 비롯해서 다양한 이유로 도심에 주택을 공급하지 못하게하는 많은 행동들은 결국 도시가 제공하는 이점들을 부자만 누리도록 하는데 제역할을 하고 있다. 고밀도 개발은 분명 여러가지 비용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러한 비용을 감당할만큼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은 이점이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그러하고 도시의 amenity를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궁극적으로 도시는 더욱 집적할 것이다. 사람들이 도시의 이점을 누림으로서 행복할 수 있고 그러한 행복이 다시 도시가 커지는데 선순환되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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